발명왕 원인호 박사와 4.19의 함성 “제 발명품이 나라와 후손들에게 도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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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민주화 혁명과정에서 장렬하게 순국한 열사들과 아직도 병상과 자택에서 투병을 하고 있는 분들과 보철이나 약품에 의지하면서 힘든 생활을 하는 분들, 4.19민주혁명에 참여했지만 아직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발생되고 있는 민주화 운동의 열사들을 찾아야한다는 한국발명원 원인호 회장의 4.19참여 헌장을 듣기 위해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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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께서는 4.19혁명 때 총탄에 의해 다리도 절단하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하시는데 그에 대한 보상은 받고 계시는지요? 


지금 생각하면 역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가 탄생되기까지 어느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발버둥 칠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단 역사의 흐름이 결정되면 유리하면 자기공이고 자기편이라고 아전인수식 선전(public relation)하는 것이 대부분의 정치 형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왕조시대나 현대 사회도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01 모두 역사나 분화로 기록된 세대를 초월한 모든 사람들의 나침반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한 세대의 역사가 되려면 구비 요건이 필요하지요. 역사가 탄생한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에서도 그 현상이 적어도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인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초원을 뛰어다니면 그는 이미 지식인의 영역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굴레가 있고 그 중 굴레를 벗어 버리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삶도 어쩌면 거대한 연극무대입니다. 아직도 명예회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연극무대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4.19혁명에 직접 가담하고 부상을 당했지요. 방금 말한 연극 무대 속에서 주인공이 무대고 엑스트라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4.19혁명 무대는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 정신은 우리 대한민국 민주화에 큰 핵을 그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4.19혁명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일선에서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해서 정부에서 주는 훈장 포상은 받았지만 아직도 그늘에 가려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민주화운동의 참여자들에게 국가보훈처와 4.19단체들이 소외된 민주화운동 동지들을 적극 발굴해야 된다고 봅니다.


드러난 공로자들에게도 말하고 싶은 것은 본인들의 공로가 인정되었다고 해서 당시 같이 생사를 함께 했던 동지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인정한 유공자들은 책임을 가지고 주변에 희생된 동지들의 발굴에 한충 책임을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이 나라 민주화가 된 것이 일부 앞장선 동지들 때문만이 아니고 4.19민주혁명때 직접 참여한 동지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공로자 선정 기준이 있습니까?

물론 기준이 있어야 질서가 있지요. 지난 역사를 돌이켜 봅시다.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을 보세요. 일본놈들에게 들키지 않을려고 비밀조직을 해서 독립운동을 했지만 족적이 없다 하여 애국지사들에게 공직을 주지 못하고 있고 애국지사 가족들이 각 부처 등을 헤매며 독립운동 사실을 밝히려 했지만 신문이나 주변 사람들은 근거가 없다고 해서 보상을 받지 못한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오히려 친일세력이 보상받은 사실이 있어 그 보상은 다시 국가에 반납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오히려 팔방으로 애쓰다가 벽이 높기 때문에 “누가 알아달라고 한 일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한일인데. 하며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지나온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모든 역사를 바로 잡아야 민족정기가 바로 선다고 봅니다.


4월이면 들리는 것 같은 그 총성과 함성을 생각할 때 58주년을 맞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4.19 혁명의 주인공들을 찾아내어서 이들에게  민주화운동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4.19 담시에 회장님이 겪은 현장 사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960년 4월 19일 58년 전,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렇게 마음이 허전하고 아픈지 모르겠습니다. 국민대학교 경제과 야간에 재학중에 있으면서 소기업을 하면서 고학을 할 때 입니다. 이 때만해도 전국 고학생 연맹도 있고 또 시기적으로 어려운 때여서 감히 대학을 다니는 것은 생각조차 어려울 때입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인정받을 수 있는 때여서 고학을 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1960년 4월 18일 우리 국민대학교의 학생들도 학교에 모여 19일 혁명에 가담한다는 소식을 듣고 19일 오전에 학교에 가보니 우리학교에 완전무장한 정사복 경찰관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어 학교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2교시를 마치고 나오는 주간학생들과 적선동 사잇길을 걸어서 시청앞에 이르러 학우들과 중앙대학교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합류하여 끝까지 항쟁할 것을 다짐하고 있을 때 무장 경찰들의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에 쫓겨서 무교동, 서린동 골목을 거쳐 광화문로터리에서 동국대학 학생들과 한양대학교 학생들과 합류하여 저지하는무장경찰관들과 대치하며 적선동 입구를 지나 경부대를 향해 쳐놓은 바리케이트를 뛰어 넘어 경무대로 몰려가는 과정에 무차별적으로 날아오는 총탄 맞고 왼쪽 측두부는 총탄이 스쳐지나갔고 왼쪽 하퇴부에 총탄을 맞아 관통과 함께 뼈가 부서져 쓰러지는 순간 무릎이 부서졌습니다.


얼마를 지났는지 정신이 들고 보니 삼각지 삼각 병원에서 절단 수술이 끝나고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니 시내 큰 병원에 만원이라 이곳에 어떤 군인같은 사람들이 내려놓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삼각병원 10호실에서 입원하고 두 번의 왼쪽다리 재 절단 수술과 오른쪽다리의 장단지 부위와 무릎 밑 하퇴골두 정형 수술과 다행히도 왼쪽 두개골 부위는 총탄이 스치고 지나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흉터만 남아있습니다.


30일간의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여 통근치료를 하면서 완쾌되었으나 그 후유증으로 겨울이 오면 절단부위 통증과 전신 통증으로 밤을 새울 때가 많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 다음날 밤 11시 군용 스리코터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 14일 동안 죽음을 넘나드는 모진 고문 끝에 풀려난 후유증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때로는 심신의 혼란스러움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떼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4.19민주혁명 대열에서 피 흘리던 때를 생각하면, 같이 생사를 넘나들며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기억을 되살리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격정하며 끝까지 이 나라를 지켜보며 내가 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발명에 더욱 매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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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께서 평소에 4.19정신과 미래 사업 발명이야기를 자주 하시는데 그동안 발명이나 특허가 얼마나 되시는지요?

우리나라 이력서는 학력으로 평가를 하지만 독일 등은 이력서에 특허개발의 이력이 우선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자원이 없는 나라이기에 기술개발만이 살 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말했듯이 지적재산권 세계화 확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화에 발맞추어 특허강국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허권의 보유와 특허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는 특허전쟁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주장하기를 1인1건 특허운동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 동안 약 3500여개의 발명과 다수의 특허를 냈습니다. 발명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산을 투자 하기 때문에 심사숙고는 필수이고 사업화의 실패시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외롭고 힘든 싸움입니다.


앞으로 국가에서 발명가들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만 해도 이공계대학을 나오면 고위공직의 중요직책을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사법고시 등 인문계열이 유리 한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발명과 연구하는 일에 보람과 자긍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발명을 개발하다보니 정부에서 주는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나는 3.1민족독립정신과 4.19민주화혁명정신을 나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하여 애국하려고 합니다.후세대의 발명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장님 사무실에 와보니 회장님 이 걸어온 피나는 발명의 흔적을 볼 수 있고 회장님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명가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받으신 상들은 어떤 것들인지요?

 

본인이 개발한 3600여 건의 발명중 1200여 건의 특허는 1980년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LA, 피츠버그' 파리, 뉴렌베르크·서울, 도쿄 부다페스트, 블가리아 쿠알라룸푸어 둥의 국제발명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여 150여 개의 금, 은 동 메달과 다수의 특별대상과 그랑프리를 받아 대한민국의 기술, 특허 국위를 선양하고 있으며 정부는 저의 발명 공적을 인정하여 국가로부터 1982년 산업포장과 1988년 철탑산업훈장, 1996년 동탑산업훈장과 2012년 국민훈장 목련장, 그 외 많은 정부 유공증서 등을 수상하였고, 대정부의 정책제안으로 역대정부로부터 ·발명의 날 부활, ·발명보호법을 진흥법으로, 특허법원 창설 등 발명발전의 이정표를 이끌어냈고 신산업분야와 관련된 정책 제안 및 입법과 제도개선 국정 감사 모니터단장으로 참여중이며 특별히 현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발명계의 특별정책제안으로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미완된 현재의 창업벤처정책을 생산적인 새로운 창업정책과 발명정책으로 수립해 놓았다. 


특히 2000년부터 개최되는 서울국제발명대회와 서울여성국제발명대회의 서울창설과 유치개최 제안은 나의 국제발명 이벤트 작품으로 세계발명사에 기록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회장님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나라가 있고 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다 애국자들이고 나라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지요. 가끔 기우이면 좋겠지만 요즘 신세대들보면 걱정이 될 때도 있어요. 우리기성세대들 가슴에는 나라 하면 국기만 봐도 생각이 다르고 우리나라가 잘 되면 감격하고 그래요.


세계 속에 우리 민족의 위상이 높아지면 자랑스럽고 눈물이 납니다. 제가 하는 발명품이 세계화속에 나라와 후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나라가 편안해야 우리 국민들이 편안히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 만 민주주의만이 이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특별히 제안합니다. 


12월에 개최되는 서울국제발명대회에 북한의 발명가들도 참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남·북의 발명품이 세계지식시장에서 함께 전시를 하는 것입니다.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나라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시련을 많이 겪어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제 세계의 중심국으로 우뚝 서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지구촌 인류의 숙제인 생명공학산업과 대체 에너지 개발로  큰 업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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